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P-51 머스탱 (문단 편집) == 개발 및 개량 == 1940년 4월 자국 항공기 생산력만으로는 루프트바페(독일 공군)에 대항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영국은 미국에 구매단을 파견하여 좀 쓸만한 미제 전투기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 전투기는 성능에서 [[Bf 109]]에 미치지 못하는 [[P-39 에어라코브라]], [[P-40 워호크]]나 [[F4F 와일드캣]] 정도 뿐이었다. 영국 구매단은 P-40을 계약한 뒤에 개발 회사인 커티스 사의 제조능력 부족 때문에 라이선스 생산해줄 회사를 찾다가 노스 아메리칸 사[* 당시 미 국방부에게 "새 전투기 좀 개발하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필요 없어요."하는 식으로 무시당하고 있었다.]를 방문해서 "커티스 사의 생산 능력이 모자라서 그러는데, P-40 좀 같이 생산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라고 제안했다. 이 말에 제임스 킨델버거 사장의 심기가 불편해졌음은 물론이다. 심기가 불편했던 킨델버거 사장은 당시 주임 설계기사였던 에드거 슈미트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영국 신사 양반들이 우리더러 P-40을 만들어 달라는데?" 사장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던 슈미트는 이렇게 대답했다. "천하의 영국 공군이 구닥다리 설계의 P-40이나 써서야 되겠습니까? 여기 제 책상에 제가 수년동안 혼신의 공력을 들여서 설계한 전투기 설계도가 있습니다. 이걸 영국 구매단에게 제안해 보면 어떻겠습니까?" 사장은 좋아라 하고 설계도를 들고 바로 영국행 비행기에 올라 영국 공군에 역제안을 하게 된다. 사실 설계기사였던 에릭 슈미트는 오래 전부터 최고 성능의 전투기를 개발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으며 몇 년동안 혼자서 전투기 설계를 완성시키고 있었다. 최고 성능을 목표로 했기에 당시 최신 기술인 층류익[* 가장 오해가 많은 부분으로 많은 미디어나 서적에서 이 층류익이 머스탱 설계의 핵심인것처럼 설명하나 [[NASA]]의 전신인 NACA의 리포트나 NASA의 공식 서적들을 살펴보면 설계와는 별개로 층류익 효과는 40% 수준으로 공기역학적으로 동시대 다른 기체들과 비교해 그 효과를 체감할 수준은 아니라고 서술하고 있다. 물론 총알이 창공을 가르고 생사여부가 종이 한 장 차이로 바뀌는 전장에서는 무의미하지는 않았다.]이나 마이너스 항력(즉 추력)을 유발하는 라디에이터 흡기구 등을 설계에 통합시켰고 결국 당대 최저의 항력계수 0.0169를 가진 기체를 설계하는데 성공했다.[* 재밌는 점으로, P-51은 설계부터 앨리슨 엔진 말고도 멀린 엔진의 장착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영국은 이전에도 P-40의 멀린 엔진 장착형을 구매해간 전적이 있었기 때문.] 당시 영국 구매단은 P-40의 성능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국과 협의를 마친뒤에 P-40보다 좋으면 즉시 400기 구매, 아니면 계약은 무효라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한다. 그리고 에릭 슈미트가 예전부터 만들어온 전투기 설계를 바탕으로 117일만에 모든 면에서 P-40을 능가하는 신형 전투기가 탄생했다. [[파일:external/img2.ruliweb.daum.net/21476095020.jpg]] [[파일:external/img2.ruliweb.daum.net/21476095021.jpg]] 테스트 중 사고난 NA-73X [[파일:external/img2.ruliweb.daum.net/21476096610.jpg]] 최초의 프로토타입인 NA-73X와 XP-51의 모습 이 성능에 만족한 영국 공군에서 320대를 머스탱 MK.I 이라는 이름으로 발주, 도입했다. P-40에도 사용된 엘리슨 엔진을 장착한 초기형(A형)은 저고도에서는 당대의 독일 전투기보다 우수했지만[* 여기서 말하는 저고도 성능은 속도 성능이다. 저고도에서 엔진수명을 팍팍 깎아먹는 고압분사를 했을시 약 3800m에서 637kph의 수평속도를 가졌다. 그에 비해서 동시대의 Bf 109 G-6와 같은 엔진을 지녔던 G-2의 경우 최고속력이 636kph였다 G-6는 G-2보다 무겁지만 MW50이 장착되어 있었으므로 최고속력은 비슷할 것임을 생각하면 확실히 고속이었던 모양.][* G-6가 MW50을 장착한 건 AS모델로 넘어가서(44년 중 후반기) 이루어졌다. 즉, 머스탱 A형이 등장한 시기에는 그런 거 없었다. 즉, A형 머스탱이 세간에 알려진대로 비행성능 고자는 절대 아니었다. 다만 고공에서 맥을 못 췄을 뿐...인데 미군은 장거리 폭격기 호위전투기가 필요했으므로 A형 머스탱은 계륵같은 존재였다.] 고도 4000m만 올라가도 성능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영국 공군은 머스탱을 지상공격이나 저고도에서 적 공격기를 쫓아내는 정도로만 사용했다. 혹은 정찰 장비를 장착해 고속 정찰기로 사용했다. 물론 지상 지원용으로 사용된 모델은 히스파노 4정을 날개에, 50구경 2정을 카울링에 장착하여 강한 위력을 자랑했다. 미군도 2대를 가지고 있었으나 영국군을 위해 개발된 전투기니 미군에게는 적합하지 않을 것라면서 흥미를 못 느껴 거의 방치해두었다. 1년 가까이 방치되어있다가 나중에 머스탱을 가지고 공압식 기관총 급탄장치를 시험해보던 테스트 파일럿이 말하라는 급탄장치 이야기는 안하고 기체 이야기만 하면서 '저고도에서는 미친 것 같다.'라고 보고를 올렸는데도 별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진주만 공격 후 2차대전에 참전하자 전투기 1기가 아쉬웠던 미국에게 저고도 비행성능을 인정받아서 미 육군 항공대는 급강하용 에어 브레이크를 다는 등의 [[마개조]]를 통해 공격기 A-36 아파치로 채용했다. 아파치는 영국 공군에도 채용되어 머스탱 Mk. I 급강하폭격기(...)라고 명명된다. 이 물건은 50구경 6정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군에서도 아파치라는 이름은 얼마 안 가 머스탱으로 바뀌었고, 원본의 경우, 엔진을 고성능 엘리슨으로 교체하고 20mm 캐논만 4정을 장착해 사용했다. 비행 성능을 높이기 위해 개량을 거친 모델은 무장을 50구경 4정으로 다운그레이드하여 영국군에 머스탱 Mk. II라는 이름으로 채택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